안녕하세요, 자본노동자입니다.
최근 시장에서 가장 핫했던 이슈는 누가 뭐라고 해도 하이브와 민희진 대표 사이의 갈등이었습니다. 저는 이 내용을 정말 여러번 읽어본 끝에야 겨우 결론을 내릴 수있었습니다. 이건 증권시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경영권 다툼이 아닙니다. 아티스트의 자존심 싸움입니다.
갈등의 당사자인 방시혁 의장과 민희진 대표. 최소한 민희진 대표는 지금 기업의 경영자가 아니라, 뉴진스라는 걸작을 빚어낸 아티스트의 정체성으로 이 사태를 대하는 것으로 읽힙니다.
처음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체 지분 20%를 가지고 어떻게 하이브랑 다툼을 벌이는지, 혹은 계약상의 내용이 어떻길래 이 시점에서 갈등을 표면화 하는지.
흔히 수면 아래에서 벌어질법한 이런 내용의 복잡함 이전에, 그냥 갈등의 양상 자체가 너무 낯설었기 때문입니다.
명확한 비교를 위해, 주식시장에서 상장사 경영진들의 갈등이 어떤식으로 이뤄졌는지 돌이켜봅시다. 당장 지난달에 있었던 한미사이언스의 주총대결과 비교하면 차이점은 선명합니다.
우선 각자의 갈등 포인트, 다른 말로는 이행하고 싶은 목표가 뚜렸합니다.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모녀 측은 OCI와의 통합 추진을, 형제 측은 반대를 주장했었습니다.
두번째, 그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각자의 수단과 목적이 명확합니다. 실제로 한미 분쟁에서는 각종 가처분과 소송이 오고 갔고. 양측 모두 주주총회 승리라는 목적을 위해 세를 결집했습니다.
이렇듯, 대게 상장사 경영진의 다툼은 주주총회라는 이벤트와 그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적이 명확하게 대립하고. 이해관계자들은 각자의 지분이라는 수치로 본인들의 입장을 표시하게 됩니다.
반면 하이브 - 민희진 갈등은 어떻습니까? 민희진 대표의 지난 기자회견에서 위의 요소 중 어떤 것들을 읽을 수 있었나요?
그것이 울분에 찬 일갈이든 감정적인 하소연이든, 아무리 봐도 기업의 CEO로서 던지는 항의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이 사태를 일반적인 주식시장의 문법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봅시다.
지금 공개된 내용으로 보면 민희진 대표가 폭발한 트리거는, 방시혁 의장의 아일릿입니다. 쉽게 말해 본인이 만든 뉴진스 라는 걸작을 하이브가 카피해서 시장에 풀어냈다는 주장이죠.
자, 사태를 보는 시각을 CEO에서 아티스트로 돌리고, 주식시장의 온갖 규정과 룰들을 다 지우면 어떨까요?
레이블 체제로 대표되는, 안정적으로 성공작을 만들고 싶어하는 하이브의 시스템 지향. 여기에 BTS를 성공시키고 아일릿을 새로 기획한 방시혁.
반면, 이 거대 엔터기업이 만드려는 체제의 반대편에서, 각고의 노력 끝에 뉴진스를 개인기로 성공시킨 민희진.
하이브의 시스템과 아티스트의 유니크함이 부딪히고. 기업의 자산이라는 입장과 대표 본인의 걸작이라는 입장이 부딪히고. 신작 아일릿을 출시하려는 방시혁과 뉴진스를 대체불가로 만들려는 민희진이 부딪힙니다.
실제로 사업가라면 본인이 출시한 상품이 시장에서 성공했고, 핵심관계자로 있는 기업이 후속작을 출시하는 상황에 노골적인 반발심을 보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개인의 커리어를 위해서든 혹은 기업을 위해서든, 더 크게 커나갈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반면, 화가가 자신의 역작을 세상에 내놓았고 만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상황은 어떨까요? 만약 매니지먼트사가 그 화풍을 그대로 옮긴채 연작을 찍어낸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긴밀한 협의와 설득이 없다면, 당사자는 매우 큰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낀채 표절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대표 개인이 보여준 캐릭터성도 그렇고 발언의 내용도 그렇고. 지금 하이브와 민희진 대표가 놓인 상황은 아무리 봐도 전자보다는 후자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보면 자본시장의 문법으로는 도저히 풀리지 않았던 모든 내용이 설명됩니다.
이제 매우 어이 없는 방식으로 이 사태의 결론을 내려보겠습니다. 하이브라는 시총 조단위 대기업과 뉴진스가 얽힌 이 사태의 본질은 결국 자존심 싸움입니다.
제 사견이지만, 민희진 대표에게 하이브를 어떻게 하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습니다. 방시혁 의장도 뭔가 대단히 잘못된 의도 내지 음모를 가지고 민희진 대표를 찍어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민희진 대표의 성격과 일하는 방식, 그동안의 행적이 원래 이랬고. 그게 방시혁 대표의 아일릿과 엇갈려서 터져나온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건 차라리 이혼소송에 가깝지 상장사의 경영권 다툼은 아닙니다. 우리 생각 이상으로 민희진 대표가 브레이크 고장난 사람이고, 성격도 평균적인 범위를 이탈한 캐릭터라서. 혹은 방시혁 의장이 우리 생각보다 소심하거나 뒤끝 있는 사람이고, 자존심 강한 성격이라서 생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릴 수 있는 이 사태의 가장 행복한 결말은, 내가 잘났니 니가 못났니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이혼서류 도장 안 찍는 부부싸움 엔딩입니다. 오히려 민희진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이건 이해관계보다는 감정의 비중이 더 높은 문제로 읽히기에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추가로, 이번 사태로 하이브가 대단한 엔터 기업이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습니다. 삭막해져가는 국내증시에 이런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벤트로 분위기를 띄워주다니. 업의 본질에 충실한 기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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